국가인권위원회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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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인권'이란 고령화 시대의 인권이다>>
◈ 대한민국은 늙어가고 있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가 발표된 지난 9월 7일 각 언론사들이 이 조사결과를 보고 뽑아낸 헤드라인은 거의 대부분 '늙어가는 대한민국'이었다. 그럼, 우리나라는 얼마나 늙었을까?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2017년이면 고령사회로 진입하고 2025년이나 2026년이면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고 예측하고 있다. 고령사회와 초고령사회를 나누는 기준은 대체로 65세 이상 인구비율 20%이다. 이를 넘으면 초고령사회로 부르는데 학자에 따라서는 7%와 14%를 추가하여 7% 이상 14% 미만이면 '고령화(ageing)', 14% 이상 20% 미만이면 '고령(aged)', 그리고 20부터는 '초고령(hyper-aged 또는 super-aged)'이라고 명명한다. 거칠게 표현하면 젊은 사회, 늙어가는 사회, 늙은 사회, 매우 늙은 사회라 할 수 있겠는데, 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13.2%이기 때문에 '늙은'이라는 표현이 갖는 다소 부정적이고 비하적인 의미를 무시한다면 관행에 적합한 표현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고령화에서 가장 큰 문제는 그 속도에 있다. 1999년 이전에는 젊은 사회였던 우리나라는 이 해부터 늙어가기 시작해 이제 내년이면 늙은 사회에 진입하고 매우 늙은 사회는 2026년으로 예상하고 있다. 2015년 현재 전 세계에서 초고령사회로 분류되는 국가가 일본(26%), 이탈리아(22%), 독일(21%) 뿐인데, 우리가 이 세 나라에 합류할 기간이 이제 10년 정도라는 것, 그리고 젊은 사회를 마감한 이후 매우 늙은 사회까지 소요된 기간이 30년도 안 된다는 얘기가 된다. 그동안 세계 최고였다는 일본조차 이 기간이 36년이었고 이미 1860년대에 젊은 사회를 마감한 프랑스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놀라운 속도이다.
그런데, 왜 '늙은 사회'나 '늙은 대한민국'처럼 개인이 아닌 한 사회를 두고 늙었다고 표현할까?
◈ 고령사회에 대한 국가 정책
우리가 고령사회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한지는 상당히 오래다. 10여 년 전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에 「저출산 고령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범정부적으로 고령화 문제에 대응하기 시작했는데 2016년은 동법에 따라 5년마다 기획되어야 하는 <저출산·고령화사회 기본계획>이 세 번째 사이클을 시작되는 해이다.
지난 10여 년의 우리 국가 정책을 찬찬히 살펴보면, 물론 노인 소득 보장이나 연령차별금지, 또는 은퇴 후 삶의 질 향상 등 노인복지 정책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저출산'과 '고령화'가 같은 법에 함께 묶이고 있는 점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정책의 근본 목적은 노동력 감소에 따른 생산 저하와 연금 고갈, 그리고 고령자 부양에 따른 가계 부담 증가와 소비 저하 등 거시경제적 위기에 대한 대응에 있다. 즉, 고령사회는 '사회적' 문제이고, 경제 발전을 저해하기 때문에 국가는 이 위기를 타개할 사회·경제 정책을 종합적이고 범정부적으로 수립해야 한다는 관점에 서 있다. 고령사회란 고령의 개인이 점점 많아지다가 일정 비율을 넘어서면서 사회적 함의를 갖게 될 때 사용된다. 7%, 14%, 그리고 20%(때로는 21%)는 단지 임의적인 숫자일 뿐이지만 인구비율에 큰 변화를 일으키는 숫자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일할 사람이 점점 부족해지다가 경제 성장이 유의미하게 더뎌지는 것'이 바로 사회적 함의가 된다. 이 때문에 고령화 대비 정책이 고령사회의 사회적 속성에 맞춰질 수밖에 없는 점은 당연하다.
개인이 아닌 사회가 늙었다고 표현하고, 그 사회의 위기를 거시경제적 관점에서 해결하려는 국가정책이 바로 고령화 정책이다. 출산을 적게 하고 65세 이상 인구가 많아지면 그만큼 노동력이 급감하고 결국 경제성장이 더뎌지면서 공멸한다는 시나리오는 단지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그만큼 국가가 범정부적으로 철저히 대비해야 할 문제이다.
◈ 왜 노인인권인가?
고령사회 대비 국가정책이 거시경제적 측면에 초점이 맞춰 있더라도 '고령의 개인'이라는 개인적 속성은 없어지지 않는다. 경제성장이 더뎌졌다는 사회적 의미만 강조하는 과정에서 놓치는 주제들은 왜 일할 사람이 부족해졌는지, 왜 그 사람은 더 이상 일을 못하게 되었는지, 일을 못하게 되면서 어떤 불행이 시작되는지 등 개인적 위기이다. 만일 사회적 함의만 강조하고 개인적 위기를 도외시 한다면 “노인을 사회문제의 원인자 교정되어야 할 대상으로 대상화하거나,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주체적인 시민이 아닌 사회서비스에 의존하는 수동적 객체”로 바라보는 결과가 초래된다. 그래서 사회가 늙었다는 의미보다 사회를 늙게 한 개인들인 개별 노인들이 처한 구체적 위기를 파악하고 대처하는 노력도 동시에 필요하게 된다. '늙은 대한민국'을 대비하는 국가 정책은 거시경제적 대책 못지않게 개인들에게도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령사회 문제는 사회 전체의 고령화 경향에 따른 거시경제적 대안뿐만 아니라 고령화의 한 구성원으로서 노인들 개개인 및 향후 노인이 될 전체 세대 전반에 대한 개별 관심도 포함한다. 이렇게 고령 문제의 사회적 속성에 초점을 둔 정책이 기본을 유지하면서도 전 세대를 아우른 개인의 위기를 고려할 수 있는 접근법이 필요한 이유는 고령 사회에서 위기에 처한 개인은 노인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령사회의 사회적 함의는 단지 저성장에만 있지 않다. 저성장 문제는 필연적으로 세대간 갈등을 내포한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그래서 고령사회에 대한 국가 대책은 다지 고령자에게만 초점이 두어져서는 안 되고, 세대간 대화와 세대간 조정 문제를 직접 다룰 수 있어야 한다. 2002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제2차 세계고령화대회에서 채택한 <고령화에 관한 마드리드 국제 행동 계획(MIPAA)>이 중요한 이유다. MIPAA는 세대간 통합적 시각에서 고령화에 따른 인권문제를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예컨대 소득보장과 경제활동 지원은 노년 이전부터 충분히 공급되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건강권 문제도 '현재' 노인들에 한정되지 않고, '건강한 상태로 노년에 접어들도록' 훨씬 이전 세대부터 보장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것이 바로 국제 사회가 노인(old persons)이 아닌 '나이든 사람(older persons)'를 얘기하고 나아가 시간 개념을 포함하는 '고령화(ageing)' 개념으로 노인인권을 얘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울러 노인인권을 노인이라는 특정 그룹의 문제, 예컨대 취약계층으로 간주하고 보호 정책을 입안하는 경우의 한계를 지적할 필요가 있다. 흔히 사회적 약자로 아동, 여성, 장애인, 비정규직 근로자, 이주민, 난민 등 거론하며, 이들은 특별한 보호의 대상으로 간주된다. 이들 사회적 약자가 처한 특별한 인권문제 그룹은 여성이나 장애인 등 기존 사회적 약자 그룹과 본질적으로 다른 지점에 있다. 집단에 소나 장애인과 달리 노인은 시대마다 그리고 동시대라 하더라도 사회마다 연령 기준이 상이하며 변화한다. 심지어 사회가 규정한 노인 진입 연령, 예컨대 65세를 넘어섰다 하더라도 본인을 노인으로 규정하지 않는 개인들도 많으며, 반대로 농촌 거주 여성의 경우는 노인으로 인식하는 연령대가 사회 기준보다 훨씬 낮다는 연구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개인은 언젠가 노인이 된다. 즉, 노인인권은 모든 개인의 문제이다. 노인인권이 특정 연령층에 한정된 문제가 아닌 그냥 보편적 인권 그 자체가 되는 이유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노인인권이란, 고령화 시대의 인권이다.